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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향 카테고리
내 앞길은 구만리다. 나 오래 못 살거라고 작년까지 그러고 살았는데 손금 보니까 생명선에 새 줄이 그여 있더라... 최근에 생겼다. 그렇다. 살아야겠다. 내 앞길은 구만리. 연애도 졸라 바쁘게 해봐야하고 책도 많이 읽어야하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고 다들 어떻게 늙어갈 지 눈으로 봐야겠다. 나는 버리면서 성장해왔다. 이젠 챙겨들고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이 세상 어디엔가 당신이 살아 숨쉬고 있다 나는 여전히 내 큰 발에 채이고, 짧은 다리를 비틀거리며 살아간다 내 곁에는 굳이 당신이 아니어도 좋다 그리고 그대 곁에도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된다 가슴 한 켠이 씁쓸한 이 기억 하나면 그대를 생각한 시간들이 아깝지 않다 그대의 곁에 있기 위해 수없이 쏟아부은 내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조금만 더 앞에서 웃어줄 것을 내가 힘든 만큼 당신도 힘들고 슬프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내가 조금만 더 철이 들었더라면 더 세상을 많이 알았더라면 하고 보낸 불면의 밤들이 너무 많아 죽고 싶다고 할 때 앞에서 나는 당신과 함께 살아가고 싶다고 웃으며 이야기해줄 것을 조금만 더 기다리고 조금만 덜 울고 조금만 더 나에게 자신감을 가질 것을 난 아무것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어 그대가 바라보던 달이 여전히 하늘 위에 있고 나는 숨쉬고 가끔 그대를 생각하고 가끔은 가슴 아파한다 어느 하늘에서건 나를 잊어버렸던 아니면 조금이라도 생각하건 언젠가 그대 곁에서 그대를 한없이 좋아하던 이상한 어린 여자애가 어느새인가 조금 더 커서 이젠 어린 여자애라고 부를 수 없는 나이가 되어서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그냥 그렇다고 그래서 지금은 어디선가 잘 살아있기를 바란다고 언젠가 어느 하늘 아래 모퉁이에서 한번쯤은 마주치기를 그리고 시간이 지나버렸음을 깨닫기를 그냥 그러기를 지금은 바란다고 그는 바닥에 요를 깔고 이불을 덮고 잔다. 침대에서 자지 않는다. 그가 사는 집의 가구는 전부 높지 않다. 그는 남들이 밥을 먹는 상에 책을 쌓아놓고 그 앞에 앉아 책을 읽고 인터넷을 한다. 상의 집이다. 상을 콘솔로 쓰고 상을 상으로 쓴다. 10평도 안 되는 집에 상만 다섯 개다. 책장도 높지 않다. 세 단의 책장에 책을 넣어두고, 그 위에 책을 다시 쌓는다. 그리고 남는 책은.. 바닥에 버려둔다. 굴러다닌다. 최소한의 가구 - 상과 책장. 그는 옷장도 사지 않았다. 옷은 행거에 걸어둘 뿐 - 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가 얻은 것은 햇빛이었다. 창문을 가리지 않았으니까. 다른 이들이 수많은 가구와 장식으로 창문을 가려 잊어버렸을 햇빛을 그는 많은 것을 버리고 얻어냈다. 그 아래서 잔다. 바닥에 요를 깔고 이불을 덮고 잔다. 언제나 그 바닥에 기대듯 모로 누워 팔과 손을 땅에 대고 잔다. 내가 긴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는, 꼭 해가 막 뜨기 시작하는 아침이다. 그리고 그는 그 집에서 자고 있다. 곧 깨서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야 하는 월급쟁이가 자고 있다. 창문을 가리지 않아 들어오는 햇빛을 그대로 받은 채로. 나는 집에 들어와 짐을 대충 던져 놓고, 그 평화로운 얼굴을 바라본다. 햇빛은 바닥에 기댄 그의 손과 팔, 그리고 나른하게 드러난 다리를 따습게 비춘다. 그리고 나는.. 그가 곧 나가야 할 시간임을 알고, 깨워야 함을 알면서도 그가 맞춰놓은 알람을 꺼가면서도 그 모습을 바라보고만 있다. 아침의 나른함과 밝은 빛의 온기에 같이 취하고, 그의 무표정하지만 편안한 얼굴에 취해서. 끝내는 나도 그 옆에서 쓰러져 같이 잠들고야 만다. 일상. 그리고 아침과 일과 사이 짧은 시간. 그는 눈이 뜨면 다시 악다구니와 같은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 순간.. 가물가물한 시야 속에 그의 평안한 모습이 보이는 그 순간. 그 햇빛과도 같은 순간. 나는 웃으며 잠이 든다. 햇빛이 따뜻하다. # by vakari | 2007/06/03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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